쉐퍼 시필 이벤트 참가 신청을 하고 기다리던 중,
펜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 1일

택배 상자를 열자, 뽁뽁이로 감싼 펜케이스와 잉크병이 보였다.
비젠에서 동봉한 안내서도 있었다. 사용 기간과 반납 예정일이 정확하게 명기되어 있다. 역시 베스트펜이다. ^^

내가 좋아하는 시가형으로 생긴 만년필이다. 매끈하고 심플하다.
금속캡이 유광 재질이라 지문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옆에서 조카녀석이 '지문 인식 기능이 있는 만년필'이라고 농담을 한다.

무게감이 꽤 있다. 나는 필압이 약한 편이라서 무거운 펜이 쓰기에 편하다. 우선 손에 잡아 본 느낌은 만족스럽다.

캡을 열어 보았다. 돌려 잠그는 나사식 캡이 아니라 밀어 닫는 푸시 캡이다.
신속함과 간편함에서는 장점이 되겠지만, 푸시 캡의 경우 사용하다 보면 닫은 상태에서 헛도는 일이 종종 있어서 불안한 점이기도 하다. 쉐퍼 펜은 처음 써 보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닙에 살짝 물기가 맺혀 있는 게 보인다. 젖은 티슈를 살짝 갖다 대니 희미한 잉크 얼룩이 생긴다. 세척의 흔적인 듯하다.
배럴과 그립부를 돌려 분리하니 컨버터가 장착되어 있다. 쉐퍼의 독특한 잉크 충전 방식(터치다운 필링 시스템)을 들은 바 있어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아쉽게도 스크류식 컨버터이다.

컨버터를 분리하고 닙과 컨버터의 물기를 제거한 다음, 다시 컨버터를 끼우고 잉크를 채워 시필 시작.
소문대로 세필이다. F촉인데도 다른 브랜드의 EF촉과 같은 정도의 획이 나온다.
세필을 좋아하여 대부분의 펜을 EF로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 또한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약간 사각거리는 느낌이면서도(종이를 긁거나 걸리는 느낌은 아니다) 종이 위를 부드럽게 달린다. 필기감이 좋다.
획이 끊기거나 헛발질을 하는 일도 없다.


제 2일

필기감이 좋아 계속 뭔가를 쓰고 있다. 사각거리는 느낌이 많이 없어졌다.

인레이드 닙이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이다. 하이힐을 신고 쭉~ 뻗은, 예쁜 발등의 곡선 같다. ^^
배럴이 약간 굵은 편이어도, 닙의 날렵함 때문에 둔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18K 닙의 광택도 눈부시다. 거실 조명등 아래 글을 쓰고 있으면, 촉 주변에 동그랗게 반사광이 생긴다. 재미있다.

장시간 필기를 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필압이 약한 편이라, 오히려 가벼운 펜을 장시간 쓰는 것이 불필요한 힘을 들이게 되어 부담스러웠다.
원래 배럴 뒤쪽에 캡을 꽂지 않고 쓰는데, 캡을 한번 꽂아 보았다. 밸런스는 좋은데, 내 손에는 조금 버거웠다. 손이 큰 사람이나 남성이라면 캡을 꽂고 써도 좋을 듯하다.



제 3일

짧은 시필 기간이 끝나고 펜을 돌려 보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만년필을 세척하고 되도록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담았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의미있는 체험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좋은 이벤트를 마련해 주신 베스트펜에 감사드립니다.